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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마담투소_1

Big_Man 2013. 2. 28. 22:37

마담투소 홍콩

 

마담투소 홍콩에는 실제와 아주 흡사한 밀랍인형 100여 개가 전시돼 있다.

마치 실제 같은 유명인사들의 밀랍인형들을 보면서 스타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해 보거나,

실물과 얼마나 닮았는지 비교해봐도 재미있다.

 

피크타워에 위치한 마담투소 홍콩은 홍콩 글래머, 히스토리컬 & 내셔널 히어로즈,

월드 프리미어, 스크림, 챔피언즈, 뮤직 아이콘 등 총 6개 테마 존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곳에서 세계 유명인사들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이소룡으로부터 쿵푸를 배워볼 수도 있고, 견자단으로부터 영춘권을 배울 수도 있고,

오바마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있으며,

니콜 키드먼과 함께 레드카펫을 밟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고,

안젤리나 졸리, 브래드 피트와 친구처럼 어울려볼 수도 있다.

 

또한, 야오밍과 함께 슛을 날려볼 수도 있고, 레이디 가가와 함께 춤을 출 수도 있으며,

데이비드 베컴과 함께 화려한 발놀림을 선보일 수도 있으며, 유덕화의 심장소리를 들어볼 수도 있으며,

홍콩의 인기 만화 캐릭터인 마담 맥과 맥덜도 만나볼 수 있다.

 

스크림(SCREAM) 존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홍콩 최초의 상설 공포 체험관이다.

버려진 수용소라는 으스스한 배경을 토대로 실제 사람 연기자들과 밀랍인형 괴물들이 뒤섞여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한다. 사이코패스들이 날뛰는 수용소의 공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마지막에는 기념품 상점에 들러보자. 다양한 종류의 기념품과 선물을 판매하고 있는데,

맞춤형 밀랍 손, 실물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미니어처 인형,

3D 글래스 큐브 등 다양한 물품을 구경할 수 있다.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아버지 조지 6세의 뒤를 이어 1952년 왕위에 올랐다.

남편 에딘버로 공작 필립과의 슬하에 3남 1녀(앤, 찰스, 앤드루, 에드워드)를 두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1997년 6월 30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홍콩의 수장이었다.

 

 

▲ [사담 후세인]

사담 후세인(아랍어: 사담 후사인 압둘 마지드 앗 티크리티, 1937년 4월 28일 ~ 2006년 12월 30일, 문화어: 싸담 후쎄인)은

이라크의 군인, 정치인이다. 1977년부터는 이라크의 부통령이었고,

1979년 7월 16일부터 2003년 4월 9일까지 이라크를 통치한 대통령이었다.

이라크내 소수종파인 수니파 출신으로, 세속적 범아랍주의와 아랍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바트당의 지도적 인물이었다.

사담은 바트당의 장기 집권을 가져온 1968년 군사 쿠데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 [간디]

인도의 정신적, 정치적 지도자로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펼쳤다.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인도로 돌아와 뭄바이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였다.

1883년 남아프리카로 이주하여 21년간 인도인에 대한 차별 반대 투쟁을 했다.

1914년 인도로 돌아와 자치 투쟁을 전개했고 1947년 인도가 영국에게서 독립할 때까지 투옥생활을 했다.

1948년 반이슬람 힌두교 급진주의 무장 단체에게 총을 맞아 암살당했다.

 

▲ [리콴유]

리콴유(이광요)는 싱가포르의 첫 총리이다. 리콴유는 자치정부의 총리로 1959년 취임하였다.

리콴유는 1990년 총리직을 사임했지만 현 싱가폴 정부의 고문 장관으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독일어: Adolf Hitler, 1889년 4월 20일 ~ 1945년 4월 30일)은  독일의 정치가로,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지도자이자 나치 독일의 총통이었다.

 

뛰어난 웅변술과 감각의 소유자인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 베르사유 체제 이후 피폐해진 독일의 경제 발전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적 발전이라는 그의 치적은 전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시행한 계획을 시행한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후 독일 민족 생존권 수립 정책을 주장하며 자를란트의 영유권 회복과 오스트리아 합병, 체코슬로바키아 점령 및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전쟁 중 그의 유대인 말살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강제수용소의

가스실에서 학살당했다. 또한 히틀러는 상당수의 폴란드 사람들에게까지도 유태인이라 모함하여 유태인과 마찬가지로

강제수용소의 가스실에서 같이 학살했다. 나치 독일에 의해 학살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집시와 장애인도 있었다.

 

승승장구하며 전세를 확장하던 독일은 스탈린그라드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패배하였고 히틀러는 1945년 4월 29일 소련군에

포위된 베를린에서 에바 브라운과 결혼한 뒤 이튿날 베를린의 총통관저 지하 벙커에서 시안화칼륨 캡슐을 삼키고

권총으로 자신을 쏘아 자살했다. 그러나 독약 캡슐을 쓰지 않고 권총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의 어머니인 클라라와 결혼하기 전 이미 알로이스 히틀러(아돌프 히틀러의 아버지)에게는 2명의

자녀(장남 알로이스 2세와 딸 앙겔라)를 두고 있었고 결혼 후 아돌프를 갖기 전 낳은 클라라의 아들 두 명과 딸 한 명은 모두 일찍 죽었다.

양봉일에 열중해있던 아버지와 아돌프의 관계는 소원했던 반면 이미 자신의 친자식을 셋이나 잃은 클라라는

아돌프마저 일찍 죽게될까 두려웠고 그를 애지중지하며 키워 아돌프는 클라라의 응석받이가 되었다.

 

 이어 1893년 남동생 에드문트가 태어났고, 1896년 여동생 파울라가 태어났으나 에드문트는 일찍 죽게 되고

결국 아돌프와 파울라만이 클라라의 친자식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또한 아돌프가 7세 되던 해 당시 14세였던 그의 형 알로이스 2세는 아버지 알로이스와의 마찰로 가출하게 된다.

독일 출신이라는 설이 한때 돌기도 했지만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다.

한편 그는 1939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히틀러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독일군에 자원 입대하였다. 열렬한 독일민족주의자, 반유대주의자였던 그는

전쟁에서 패배하자 크게 낙담하였고, 이후 정치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는 독일의 11월혁명과 베르사유 조약에 반대해,

반혁명 반유대주의 정당인 독일노동당(이후의 나치당)에 들어갔다.

뛰어난 연설 솜씨로 당세를 넓혀나가 1921년에는 나치당 총서기가 되었다.

1933년 1월 총리직에 올랐고, 군부와 자본가의 지지로 이듬해 절대권력자인 총통에 취임했다.

 

이미 전쟁을 결심했던 그는 1939년 9월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의 가혹한 점령정책과 유대인에 대한 반(反)인륜적인 범죄는 전세계적에 나치 저항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독일에서 반히틀러 세력은 극히 적었다. 그는 끝까지 전쟁을 수행했으나 결국 패배했고,

1945년 4월 30일 베를린의 총통 관저 지하에서 음독자살했다.

 

 

 

 

 

▲ [덩샤오핑]

덩샤오핑은 중국의 정치가로 1930년부터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여 마오쩌둥의 대장정(大長征)에 참가한다.

1949년 공산당 정부가 수립된 후 덩샤오핑은 1954년 부총리가 되고 1956년부터 1966년까지 총서기를 역임했다.

덩샤오핑은 경제 개혁과 개방 정책을 펼치며 마오쩌둥 체제하에 오랜 시간 동안 정치적 및 문화적으로 고립돼 있던

중국에 국제 사회의 참여도를 높였다.

 

▲ [원자바오]

원자바오는 2003년 3월 중국 국무원총리로 발탁되었다.

서열 3위이며, 중국 공산당의 4세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원 총리 당조서기를 맡고 있다.

 

 

▲ [덩샤오핑]

 

 

 

▲ [후진타오]

중국의 국가주석 후진타오는 21세기 중국에 신선한 정치적 바람을 일으켰다.

1942년 출생. 1959년에 대학교 수리학(水利學)과에 진학했고 졸업 직후 정부의 수자원 관리부에서 일했다.

1982년 정치에 입문하여 공산주의 청년단 1서기로 일인자가 됐다. 3년 후 구이저우 성의 서기로 임명됐고, 최연소 지역 서기가 됐다.

구이저우 성과 티벳에서의 성실하고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에게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덩샤오핑은 1992년 중국 공산당의 소위 3세대 리더로 후진타오를 지목한다.

2003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이 된 후 개혁을 계속 단행하여 12억 중국인들의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촬영 : 2013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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