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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4)

Big_Man 2013. 1. 1. 18:29

 

 ▲ 안양루 계단을 오르면 석등(국보 제17호)과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이 시야에 들어온다.

 

 ▲ 안양루(安養樓)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놓인 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무량수전과 함께

이 영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건물에는 위쪽과 아래쪽에 달린 편액이 서로 다르다.

난간 아랫부분에 걸린 편액은 '안양문'이라 되어 있고 위층 마당 쪽에는 '안양루'라고 씌어 있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2중의 기능을 부여한 것이다.

'안양'은 극락이므로 안양문은 극락 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한다.
따라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인 무량수전이 위치한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다.

 

안양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여러 건물들의 지붕과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라이 보이는 소백산맥의 산과 들이 마치 정원이라도 되듯 외부 공간은 확장되어 다가온다.

부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이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의 장관을

시문으로 남겼고 그 현판들이 누각 내부에 걸려 있다.

 

 ▲ 안양루(安養樓)

 

 ▲ 안양루(安養樓)

 

 ▲ 안양루(安養樓)

 

 ▲ 안양루(安養樓)와 석등

 

 ▲ 안양루(安養樓)와 석등

 

 

 

 

 ▲ 안양루(安養樓)와 석등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앞 石燈)

 

국보  제17호 (지정일 : 1962. 12. 20)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부석사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이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세워진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석등은 무랸수전과 자오선상에있으며 석등 높이 297cm이다. 4각 바닥돌은 옆면에 무늬를 새겨 꾸몄으며,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기둥을 받치고 있다.

전형적인 8각 기둥형태인 이 기둥은 굵기나 높이에서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는데,

위로는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은 윗받침돌을 얹어놓았다.

8각의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세련된 모습의 보살상을 새겨놓았다. 지붕돌도 역시 8각인데,

모서리 끝이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해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얹었던 받침돌만이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 석등(국보 제17호)과 무량수전(국보 제18호)

 

 ▲ 석등(국보 제17호)과 무량수전(국보 제18호)

 

 ▲ 석등(국보 제17호)

 

 ▲ 석등(국보 제17호)

 

 ▲ 석등(국보 제17호)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국보 제 18호 (1962.12.20 지정)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부석사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 무량수전(국보 제18호)

 

 ▲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榮州 浮石寺 三層石塔)

 

보물 제249호 (지정일 :  1963. 01. 21)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9 부석사 무량수전 동편

 

부석사 무량수전 동쪽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기단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아래층 기단은 가운데에 2개씩의 조각을 두고,

위층 기단에는 하나씩을 두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있는데,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으며,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5단으로 통일신라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다.

 

문무왕 16년(676)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아래층 기단의 너비가 매우 넓고,

1층 몸돌 또한 높이에 비해 너비가 넓어서 장중해 보인다. 1960년 해체하여 복원할 때 철제탑, 불상의 파편,

구슬 등이 발견되었고 이 때 일부 파손된 부분은 새로운 부재로 보충하였다.

탑은 원래 법당 앞에 건립되는 것이 통례이나 이 석탑은 법당의 동쪽에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榮州 浮石寺 三層石塔)

 

 ▲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榮州 浮石寺 三層石塔)

 

 ▲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榮州 浮石寺 三層石塔)

 

 ▲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榮州 浮石寺 三層石塔)

 

 ▲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榮州 浮石寺 三層石塔)

 

 ▲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榮州 浮石寺 三層石塔)

 

 ▲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榮州 浮石寺 三層石塔)

 

 ▲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榮州 浮石寺 三層石塔)

 

 ▲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榮州 浮石寺 三層石塔)

 

 ▲ 삼층석탑 앞에서 조망한 사찰 전경

 

 ▲ 삼층석탑 앞에서 조망한 사찰 전경

 

 ▲ 삼층석탑 앞에서 조망한 사찰 전경

 

 ▲ 삼층석탑 앞에서 조망한 사찰 전경

 

 ▲ 삼층석탑 앞에서 조망한 사찰 전경

 

 ▲ 삼층석탑 앞에서 조망한 사찰 전경

 

 ▲ 삼층석탑 앞에서 조망한 사찰 전경

 

 ▲ 삼층석탑 앞에서 조망한 사찰 전경

 

 ▲ 요사체

 

 ▲ 요사체

 

 ▲ 요사체

 

 ▲ 영주 부석사 입구의 관광객 편의 시설

 

 ▲ 영주 부석사 입구의 관광객 편의 시설

 

 ▲ 영주 부석사 입구의 관광객 편의 시설

 

 ▲ 영주 부석사 입구의 관광객 편의 시설

 

 ▲ 영주 부석사 입구의 관광객 편의 시설

 

 ▲ 영주 부석사 입구의 관광객 편의 시설

 

 

 

▲ 영주 부석사 입구의 관광객 편의 시설

(촬영 : 2012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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