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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황악산 직지사

Big_Man 2016. 5. 7. 23:13

 

 

 

■ 김천 직지사 가는 길

 

 

 

 

■ 김천 황악산 직지사(黃岳山 直指寺)는...

 
418년(눌지왕 2) 아도(阿道)가 창건했다고 한다. 직지사라고 한 데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桃李寺)를 창건하고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가 있다’고 하여 직지사로 불렸다는 설과,

 

고려 초기에 능여(能如)가 절을 중창할 때 절터를 측량하기 위해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측량하여 지었기 때문에 직지사라고 하였다는 설,

 

선종의 가르침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에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645년(선덕여왕 14)에 자장(慈藏)이 중창하고 930년(경순왕 4)에 천묵(天默)이 중수하였으며,

936년(태조 19)에 능여가 태조의 도움을 받아 크게 중창하였다.

 

당시의 중요 건물로는 대웅대광명전(大雄大光明殿)·대비로금당(大毘盧金堂)·극락전·원통전(圓通殿)·지장시왕전(地藏十王殿)·응진전(應眞殿)·설법전(說法殿)·선등각(禪燈閣)·대장전(大藏殿) 등이 있었다.

 

현재 금석문으로 남아 있는 대장전비에 의하면, 이 절의 대장전에 금자사경(金字寫經) 593함(函)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1399년(정종 1)의 중건과 1488년(성종 19) 학조(學祖)의 중수가 있었으며, 1596년(선조 29) 왜병들이 불을 질러 43동의 건물 가운데 천불전(千佛殿)·천왕문(天王門)·자하문(紫霞門)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렸다. 이때 법당 앞에 있던 대형 5층목탑도 함께 소실되었다.

 

그 뒤 1602년부터 70여 년에 걸쳐 절을 중건하였는데, 1681년(숙종 7)에 조종저(趙宗著)가 쓴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의 규모가 8전(殿)·3각(閣)·12당(堂)·3장(藏)·4문(門)에 정실(正室)만 352칸에 달했으며, 부속 암자는 26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805년(순조 5) 이후부터 사세(寺勢)가 차츰 기울기 시작하여 퇴락을 거듭하게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대대적인 중건에 착수하여 1966년부터 1981년 10월까지 10동의 건물을 중건하고 10동을 이건했으며, 9동을 중수하였다.

 

 

■ 김천 직지사 대웅전(金泉 直指寺 大雄殿)

 

보물 제1576호(2008년 9월 3일)로 지정된 직지사 대웅전은 조선 후기의 불전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건물이다. 조선 전기까지는 대웅대광명전(大雄大光明殿)이라고 불린 2층의 건물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서 조선 후기에 중건되면서 석가삼세불을 봉안한 단층의 대웅전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건물은 1735년에 다시 세워진 것이다.

 

 

 

 

 

 

 

 

 

 

 

 

 

 

 

 

 

 

 

 

 

 

 

 

 

 

 

 

 

 

 

(촬영: 2016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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