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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慶州 佛國寺)-[1]

Big_Man 2012. 11. 25. 17:41

 

경주 불국사(慶州 佛國寺)

 

사적 제502호 (지정일: 2009년 12월 21일)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15-1

 

토함산(吐含山) 서남록에 자리잡은 이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10년(751)에 당시 재상(宰相) 김대성(金大城)에 의해 기공되고 혜공왕(惠恭王) 10년(774)에 이르러 80여 동의 목조건물(木造建物)이 들어선 대가람(大伽藍)으로 완성되어 신라 호국불교(護國佛敎)의 도량(道場)으로서 법등(法燈)을 이어왔다.

조선 선조 26년(1593) 왜병의 침입 방화로 650여 년간 이어져오던 불국사의 건물이 모두 불타 버렸다.

그 후 대웅전(大雄殿) 등 일부의 건물이 다시 세워져 그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불국사가 문화유산으로

보존 전승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호국정신(護國精神)을 기르는 도량으로서의 옛 모습을 되찾게 하고자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쳐 창건당시의 건물터를 발굴 조사하고 그 자리에 다시 세움으로써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多寶塔), 석가탑(釋迦塔)으로 불리는 3층석탑(三層石塔),

자하문(紫霞門)으로 오르는 청운교(靑雲橋)·백운교(白雲橋), 극락전(極樂殿)으로 오르는 연화교(蓮華橋)·칠보교(七寶橋)가 국보로 보존되어 당시 신라사람들의 돌을 이용한 예술품의 훌륭한 솜씨를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비로전(毘盧殿)에 모셔져 있는 금동비로자나불좌상(金銅毘盧舍那佛坐像),

극락전(極樂殿)에 모셔져 있는 금동아미타여래좌상(金銅阿彌陀如來坐像) 등을 비롯한 수다한

문화유산들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한다.

1995년 12월에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 경주 불국사(慶州 佛國寺) (출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불국사 전각 배치도 (출처: 불국사)

 

 ▲ 불국사 전각 배치도

 

 ▲ 불국사 천왕문

 

쳔왕문 :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불국 정토의 외곽을 맡아 지키는 신)인 사천왕이 안치된 전각으로

사찰을 지키고 악귀를 내쫓아 청정도량을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엄숙하게 하여, 사찰이 신성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그러나 가장 큰 의미는 수행자의 마음 속에 깃든 번뇌와

 좌절을 없애 한마음으로 정진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 ▼ 불국사 천왕문의 사천왕상

 

 ▲ ▼ 불국사 천왕문의 사천왕상

 

 

 ▲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慶州 佛國寺 靑雲橋 및 白雲橋)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慶州 佛國寺 靑雲橋 및 白雲橋) : 국보 제23호(지정일 : 1962. 12. 20) 

토함산에서 뻗어 내려오는 한 줄기를 잘라 남향으로 석단(石壇)을 만들어 고대(高臺)를 이루고

불국사를 세웠는데, 이 석단 앞면 두 곳에 석제(石梯)를 가설하여 당탑(堂塔)에 오르도록 되어 있다.

곧, 동쪽에 있는 2단의 석제가 이것인데, 밑의 것을 청운교(靑雲橋), 위의 것을 백운교(白雲橋)라 한다.

 

18단의 청운교는 등항(登桁)에 의하여 좌우로 구분되었는데, 등항에는 중앙에 능선을 두었고, 좌우쪽 끝의

등항에는 원래 난간이 가설되어 있었던 모양이나 지금은 아래위에 돌기둥만 남아 있다.

다리밑은 작은 돌을 가구(架構)하여 궁륭형을 만들어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위쪽 양단에는

등항까지 내밀린 갑석(甲石)이 있는데, 우각(隅角)의 반전수법은 다보탑(多寶塔)이나 석가탑(釋迦塔)의

반전수법과 일치한다. 청운교를 올라서면 보도가 마련되어, 서쪽의 환상적인 범영루(泛影樓) 돌기둥을

지나 극락전(極樂殿) 앞에 이르게 된다.

청운교 위의 백운교는 16단으로, 구성양식은 규모가 작을 뿐 청운교와 같은 양식이다. 이 다리 밑에도

작은 궁륭형 통로가 마련되어 있고, 그 양쪽에서 길게 옆으로 뻗은 얇고 넓은 갑석의 수법도 청운교에서와 같다. 백운교를 올라서서 자하문(紫霞門)을 지나면 앞에 대웅전(大雄殿)이 나서고, 동서로 두 탑이 서 있다.

약 45도의 경사를 보이는 이 석제는 설계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만들어졌으며, 좋은 화강석을 써서

다듬은 수법도 정교하다. 세부양식에서도 서쪽의 석제나 기타 당탑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불국사의 중창이 경덕왕대(景德王代) 김대성(金大城)의 발원으로 이루어졌다고 전하는데,

이 석제(石梯, 돌계단)도 그 당시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불국사 자하문 (佛國寺 紫霞門)

 

불국사 자하문 (佛國寺 紫霞門) : 자하문은 750년 경에 세워졌다. 그 후, 여러차례의 중건, 중수를 거쳐

1966년 크게 보수하였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올라 자하문을 들어서면 그 곳으로부터 대웅전을 비롯한

불국토가 전개된다. 이름을 자하(紫霞. 붉은노을)라고 한 것은 부처님의 광명을 형용한 것이다.

 

 

 ▲ 불국사 범영루(泛影樓)

 

범영루(泛影樓) : 처음에는 수미범종각(須彌梵鐘閣)이라고 불렀다. 수미산 모양의 팔각정상에 누를 짓고

그 위에 108명이 앉을 수 있게끔 하고, 아래에는 오장간을 세울 수 있겠끔 하였다. 여기에 108명이라는

숫자는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것으로 많은 번뇌를 안은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108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 범영루는 751년에 건립하였고 1593년에 불탄 뒤 1612년과 1688년에 중건하였으며,

1708년에 단청을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73년의 복원 공사 때 중건된 것으로 옛 모습대로

정면 1칸, 측면 2칸이며 3층으로 된 아담한 누각이다.


범영루의 동편에는 좌경루가 있었으나 조선말에 완전히 없어졌던 것을 1973년 복원 공사 때 재건하였다.

 

※ 지금은 법고(法鼓)가 있으나 원래는 범종각(梵鍾閣)임. 751년에 세워졌다.

여러차례 중수(重修)와 중건(重建)을 거쳐 1973년 불국사 복원(復元) 때 옛 모습대로 다시 세웠다.
기단(基壇)의 돌기둥은 수미산(須彌山)을 본뜬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수미범종각(須彌梵鍾閣)이라고도 한다.

 

 

 

 

 

 ▲ 불국사 연화교 칠보교 (佛國寺 蓮華橋 七寶橋)

 

불국사 연화교 칠보교 (佛國寺 蓮華橋 七寶橋) : 국보 제22호 (지정일: 1962. 12. 20)

불국사 앞면 대석단 동쪽의 청운교·백운교에 대하여 서쪽에 연화교(蓮華橋)·칠보교(七寶橋)가 있다.

가구수법(架構手法)은 동쪽의 청운교(靑雲橋)·백운교(白雲橋)와 대동소이하며,

전체의 높이가 청운교의 높이와 같은 소규모의 것이다.

밑의 연화교는 10단의 층계를 만들었는데, 계단식 등항(登桁)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던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아래 위에 돌기둥만 서 있다. 다리밑은 호형(弧形)으로 가공한 돌로 궁륭형 통로를 만들어

놓은 점이 동쪽의 백운교와 같으나, 이 석제(石梯, 돌계단)에서 특이한 것은 층계마다 아름다운

연판(蓮瓣)이 양각되어 있는 점이다.

칠보교는 8단의 보계(寶階)로 되어 있는데, 한 장의 긴 돌로된 등항(登桁)으로 양분된 점이 연화교와 다르다.

돌기둥이 아래위에 남아 있어 석란(石欄) 설치의 흔적을 남겨 놓은 점은 같은 형식이다.

다만 규모가 작기 때문에 다리 밑에 통로를 만들지 않았으며, 보계에 특별한 조각장식은 없다.

칠보교를 올라서면 안양문(安養門)을 지나 극락전(極樂殿)을 마주하게 되는 데, 이 석제 또한 약 45도의

안정된 경사를 보이며, 동쪽 석제(石梯)의 웅장함에 비하여 아름답고 섬세한 맛이 있어 조화와 변화를

주고 있다. 이 석제도 동쪽 석제와 마찬가지로 경덕왕(景德王) 때 김대성(金大城)이 중창했을 때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4년 중수할 때에 돌간대를 다시 끼워 옛모습을 재현시켰다.
(자료출처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불국사 법고(法鼓)

 

 ▲ 불국사 법고(法鼓)

 

 ▲ 불국사 법고(法鼓)

 

 ▲ 불국사 법고(法鼓)

 

 ▲ 불국사 법고(法鼓)

 

 

 

(촬영 : 2008년 10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