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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천년고도 경주관광[2부]

Big_Man 2011. 1. 24. 21:20


▲ 경주 불국사
ⓒ 빅 맨

안압지의 야경을 촬영하기 위하여 저녁식사도 미루고 서둘러 임해전지로 향했다.
안압지에 도착하여 사진을 촬영하는 도중에 울산의 지인(혼주) 부부가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싶다며 울산에서 경주로 찾아왔다. 극구 사양을 했지만 경주까지 찾아 왔으니...
사진촬영을 중단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여러 각도에서 야경을 촬영하고 싶었는데... 다음날 낮에도 사진 촬영을 했지만 시간에 쫒겨
연못 건너편의 정원엔 들어 가 보지도 못해 아쉬움이 크다. 여기에는 다음날 낮에 촬영한
안압지의 모습도 함께 게재한다.



◆ 경주 임해전지[臨海殿址] (안압지)


▲ 경주 동궁과 월지 (慶州 東宮과 月址)

■ 입장료 : 1,000원 ■ 주차료 : 무료



▲ 임해전지(안압지)의 조감도
ⓒ 빅 맨


임해전지[臨海殿址](안압지)는 사적 제 18호로 경북 경주시 인왕동 26-1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고려 태조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의 『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 "안압지의 서에는 임해전이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의 자리를 안압지로 추정하고 있다.

일제시대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안압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보상화(寶相華) 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안압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 임해전지(안압지) 전경
ⓒ 출처 : 문화재청



▲ 임해전지[臨海殿址] 제3건물 야경
ⓒ 빅 맨



▲ 임해전지[臨海殿址] 제3건물
ⓒ 빅 맨



▲ 임해전지(안압지) 전경 (좌측: 제1건물, 중앙: 제5건물, 우측: 제3건물)
ⓒ 빅 맨



▲ 임해전지(안압지) 제3건물
ⓒ 빅 맨



▲ 임해전지[臨海殿址] 제1건물 야경
ⓒ 빅 맨



▲ 임해전지[臨海殿址] 제1건물
ⓒ 빅 맨



▲ 임해전지[臨海殿址] 제5건물 야경
ⓒ 빅 맨



▲ 임해전지[臨海殿址] 제5건물
ⓒ 빅 맨



▲ 임해전지[臨海殿址] 제5건물 야경
ⓒ 빅 맨



▲ 월지[月址] 야경
ⓒ 빅 맨



▲ 임해전지[臨海殿址](안압지)의 모과나무
ⓒ 빅 맨


벌써 10월 27일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토암산에 올라 해돚이를 보고, 석굴암, 불국사,
석빙고, 천마총, 포석정을 구경하고 상경할 예정이다.

그러나 늦잠을 자고 말았다. 서둘러 토함산에 올랐으나 시간은 벌써 7시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허겁지겁 석굴암 석굴을 향해 숨이차도록 걸었으나 이미 태양은 석굴암 석굴을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비록 해돚이는 보지 못했지만 황홀할 만큼 상쾌한 기분이었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천년이 지난 신라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가슴이
설랜다.



◆ 토함산 석굴암(吐含山 石窟庵)


▲ 토함산 석굴암(吐含山 石窟庵)

■ 입장료 : 4,000원 ■ 주차료 : 2,000원


석굴암 석굴(石窟庵 石窟)은 경북 경주시 진현동 891 석굴암에 위치한 국보 제24호로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
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넙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
보살상이 서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주실 안에 모시고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
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 하다.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현재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 토함산 올라가는 길(추락 조심을 알리는 도로표지가 이색적이다)
ⓒ 빅 맨



▲ 석굴로 / 토함산 석굴암 입구
ⓒ 빅 맨



▲ 석굴암 불국대종각/통일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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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암 일주문
ⓒ 빅 맨



▲ 석굴암 석굴 가는 길의 풍경
ⓒ 빅 맨



▲ 석굴암 석굴 가는 길에 석굴암 불상의 소중함을 알리는 비
ⓒ 빅 맨


석굴암 석굴 가는 길에 설치된 석굴암 불상의 소중함을 알리는 비의 비문을 소개하면...
"[석굴암의 불상] 우리는 무엇보다도 잊어서 안 될 작품으로 경주의 불상을 갖고있다.
영국인은 인도를 잃어버릴지연정 섹스피어를 버리지 못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귀중한 보물은 이 석굴암의 불상이다. 1994년 2월/석굴암 연구회 세움"




▲ 석굴암 석굴 아래의 감로수(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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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암 석굴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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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암 석굴도(石窟庵 石窟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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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암 석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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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암 석굴(石窟庵 石窟)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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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암 석굴(石窟庵 石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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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암 본존불
ⓒ 문화재청


석굴암의 본존 부처님은 높이 총 높이 326㎝, 대좌 높이 160㎝, 기단 상대석 폭 272㎝의
거대한 불상이다.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얹었고, 오른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을 취하고 있다. 전체적인 얼굴 상은 안정감이 있으며 종교적인 숭고함을 띄고 있다.

우리가 뚜렷한 명칭 없이 본존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석굴암 본존 부처님은 그 존재를 둘러
싸고 불교학계와 고고미술사학계에서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본존 부처님이 항마촉
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는 불교계의 주장은
전통적인 주장에 근거한 것이었고 국립박물관장을 역임했던 황수영 박사의 아미타 부처님설은
7~8세기의 역사적인 사실을 추정해서 당시 세워진 본존 부처님 대부분이 아미타 부처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두 학설 모두 설득력이 있지만 이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1998년 퇴임)로 재직
중이던 신현숙씨의 경전적 해석, 특히 석굴암 만다라설은 본존 부처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일
가능성에 대해 더 확실한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렇듯 석굴암 본존 부처님은 빼어난 작품성뿐 아니라 통일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논하게
하는 학술적 가치 또한 크다. 동해를 바라다 보는 석굴암 본존 부처님은 그 형태의 위엄
만큼이나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통일신라 불교의 찬란함을 느낄 수 있는 기념비적인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세계문화유산 석굴암 홈페이지>




▲ 토함산 석굴암 석물
ⓒ 빅 맨


토암산 석굴암에서 내려와 아침식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콘도안에 있는 수퍼마켓부터 들렸다.
오늘의 바쁜 일정을 고려해서 햇반과 라면으로 아침식사를 때우고 서둘러 여장을 챙겨 숙소를
빠져 나왔다. 다음 목적지인 불국사는 숙소에서 500미터도 안되지만 마음은 급했다.



◆ 경주 불국사(慶州 佛國寺)




▲ 경주 불국사 입장권ⓒ 빅 맨
■ 입장료 : 4,000원 ■ 주차료 : 2,000원


불국사(佛國寺)는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1번지 경주 토함산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된 사찰로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다. 이후 조선 선조 26년(1593)에 왜의 침입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이후 극락전, 자하문, 범영루 등의 일부 건물만이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친 발굴조사 뒤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백운교,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칠보교가 국보로 지정,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재는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다루는 훌륭한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아울러 비로전에 모신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극락전에 모신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유산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12월에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 경주 불국사 경내 전각배치
ⓒ 출처 : 문화재청



▲ 경주 불국사 경내 전각배치도
ⓒ 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 불국사 정문(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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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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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佛國寺)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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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후문 매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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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불국사 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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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천왕문 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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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천왕문 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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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佛國寺 靑雲橋 白雲橋)
ⓒ 빅 맨



▲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佛國寺 靑雲橋 白雲橋)
ⓒ 빅 맨



▲ 불국사 자하문 (佛國寺 紫霞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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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범영루(泛影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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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범영루(泛影樓)의 법고(法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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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연화교 칠보교 (佛國寺 蓮華橋 七寶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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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다보탑 (佛國寺 多寶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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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다보탑 (佛國寺 多寶塔)
ⓒ 출처 : 문화재청



▲ 불국사 삼층석탑 (佛國寺三層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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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대웅전(佛國寺 大雄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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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석조 (佛國寺 石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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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관음전(佛國寺 觀音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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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대웅전 불상(佛國寺 大雄殿 佛像)




▲ 관음전에서 바라 본 비로전 (정면에 불국사 사리탑 보호각이 보인다)
ⓒ 빅 맨



▲ 불국사 비로전(佛國寺 毘盧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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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사리탑(佛國寺 舍利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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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사리탑(보물 제61호)




▲ 불국사 무설전 (佛國寺 無說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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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경내 풍경
ⓒ 빅 맨



▲ 불국사 범종각
ⓒ 빅 맨



▲ 불국사 사리매(佛國寺 舍利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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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함산 불국사 복원 기념비
ⓒ 빅 맨



▲ 불국사 경내 풍경
ⓒ 빅 맨



▲ 불국사 경내 풍경
ⓒ 빅 맨


◆ 경주 석빙고(慶州 石氷庫)


■ 입장료 : 무 료 ■ 주차료 : 입구 주변에 주차할 곳 있음(무료)


경주 석빙고(慶州 石氷庫)는 경북 경주시 인왕동 449-1번지에 위치한 보물 제66호로 얼음을
넣어두던 창고로, 이 석빙고는 경주 반월성 안의 북쪽 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남쪽에 마련된 출입구를 들어가면 계단을 통하여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
갈수록 바닥은 경사를 지어 물이 흘러 배수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지붕은 반원형이며 3곳에
환기통을 마련하여 바깥 공기와 통하게 하였다.

석비와 입구 이맛돌에 의하면, 조선 영조 14년(1738) 당시 조명겸(趙明謙)이 나무로 된 빙고를
돌로 축조하였다는 것과, 4년 뒤에 서쪽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규모나 기법면에서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 경주 석빙고(慶州 石氷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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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석빙고(慶州 石氷庫)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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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릉원(大陵苑)


■ 입장료 : 1,500 ■ 주차료 : 2,000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皇南洞)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을 대릉원지구로 부른다. 대릉원
이란 이름은 "미추왕(味鄒王)을 대릉(大陵:竹長陵)에 장사지냈다"는《삼국사기(三國史記)》
의 기록에서 딴 것이다.

총면적은 12만 5400평으로, 신라시대의 왕·왕비·귀족 등의 무덤 23기가 모여 있다.
고분은 모두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시대만의 독특한 무덤군(群)으로, 크게 다음과 같은
7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① 신라미추왕릉(사적 175), ② 경주 황남리 고분군(皇南里古墳群:사적 40),
③ 경주 노서리 고분군(路西里古墳群:사적 39), ④ 신라 오릉(五陵:사적 172),
⑤ 경주 동부사적지대(東部史蹟地帶:사적 161), ⑥ 경주 노동리 고분군(路東里古墳群:사적 38),
⑦ 재매정(財買井:사적 246) 등이다.

무덤을 발굴·조사할 때 신라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금관·천마도(天馬圖)·유리잔 및 각종
토기 등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 출토된 문화재의 보고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皇南洞)에 있다.

대릉원지구 외에 나머지 4개의 경주역사유적지구는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신라 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王京) 방어시설인 산성지구 등이다.
대릉원지구를 포함해 총 52개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 대릉원(大陵苑) 입구
ⓒ 빅 맨



▲ 대릉원(大陵苑)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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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릉원(大陵苑)의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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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릉원(大陵苑)의 산수유
ⓒ 빅 맨


◆ 천마총(天馬塚)

천마총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 안에 있는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돌무지 덧널무덤
(積石木槨墳)이다. 밑둘레 157m, 높이 12.7m 되는 비교적 큰 무덤으로 5~6세기경에 축조된
어느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구조는 평지 위에 나무널(木棺)과 껴묻거리(副葬品) 상자를 놓고, 그 바깥에 나무로 짠
덧널(木槨)을 설치하여 돌덩이를 쌓고 흙으로 덮었다. 발굴조사했을 때 금관을 비롯한
유물 11,500여 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 그림(天馬圖)이 그려진 말다래(障泥)가 나왔으므로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븥여졌다. 출토된 주요 유물은 복제품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무덤의
내부구조를 볼 수 있도록 꾸몄다.



▲ 천마총(天馬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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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무지 덧널무덤(積石木槨墳)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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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포석정지(慶州 鮑石亭址)


▲ 포석정지 입장권
■ 입장료 : 500원 ■ 주차료 : 2,000원


경주 포석정지(慶州 鮑石亭址) - 문화재청 자료

종 목: 사적 제1호
소재지: 경북 경주시 배동 454-3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젊은 화랑들이 풍류를 즐기며 기상을
배우던 곳이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는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였는데, 포석정은 이를 본따서 만들었다.

만들어진 때는 확실하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로 보이며 현재 정자는 없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있다. 물길은 22m이며 높낮이의 차가 5.9㎝이다. 좌우로 꺾어지거나 굽이치게
한 구조에서 나타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은, 뱅뱅돌기도 하고 물의 양이나 띄우는 잔의 형태,
잔 속에 담긴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유상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있었으나, 오늘날 그 자취가 남아있는 곳은 경주 포석정
뿐으로,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출처 : 문화재청]



▲ 포석정지(鮑石亭址) 입구
ⓒ 빅 맨



▲ 포석정지(鮑石亭址)
ⓒ 빅 맨



▲ 포석정지(鮑石亭址)
ⓒ 빅 맨


● 사조리조트 경주 콘도미니엄


▲ 사조리조트 경주콘도 전경
ⓒ 출처 : 사조리조트 경주

이번 여행에 묵었던 사조리조트 경주콘도는 경주 불국사 숙박단지 내 경북 경주시 진현동
850-1에 위치하고 있다. 보문관광단지의 숙박시설에 비하면 오래된 건물로 시설은 좀
낡았지만 편안한 이틀을 보냈다.

특히 중탄산 온천사우나 시설이 있어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는 좋은 것 같다.




▲ 사조리조트 경주콘도의 야경
ⓒ 빅 맨



▲ 사조리조트 경주콘도 전경
ⓒ 빅 맨



▲ 사조리조트 경주콘도
ⓒ 빅 맨



▲ 포시즌유스호스텔 - 경주 불국사 숙박단지
ⓒ 빅 맨


포석정 관광을 끝으로 2박3일의 경주관광을 마감하고 경주역에 도착하여 랜터카를 반납했다.
경주역 앞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열차편으로 상경했다. 짧은 일정에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를 모두 돌아 볼 수는 없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신라인의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으니 큰 보람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자료가 경주를 관광하려는 분들께 아주 조금이라도
유용한 정보가 되었으면 더 없는 보람이겠습니다.



2011년 1월 24일 빅 맨